성규 성종 동우
내가 사랑하는 거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
1.
자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그동안 거리가 가까우면 시간이 어긋나고 시간이 맞으면 거리가 멀었다.
해가 뜨길 기다리며 곤히 자는 흰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잘생겼는데, 속눈썹에서마저 피로가 뚝뚝 묻어난다. 속상해라. 이마 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조심조심 쓸어주었다. 손톱이 닿지 않게 하는 건 보기보다 어려웠다. 집중하느라 잠깐 숨도 참았다.
안으면 잠에서 깰까봐 손끝으로만 보듬길 몇 분, 형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인사해야하나. 나는 손을 멈추고 굳었고, 눈앞의 나를 확인하자마자 형은 이불을 끌어올렸다. 너무하긴 했지. 머쓱해져서 눈만 깜빡였다. 자다 깼는데 누가 날 보고 있으면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사과를 하려고 말을 고르고 있었는데 이불 밖으로 손 하나가 불쑥 나와 내 손을 잡고 제 머리 꼭지로 가져갔다. 원하는 대로 쓰다듬어주니 그제야 잠이 깨는지 앓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먹어?”
“아니.”
형이 양치를 하러 들어간 욕실 밖에 식탁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양치하는 모습까지 지켜보는 건 이상한 걸까. 하지만 자는 모습도, 양치하는 모습도 다 보고 싶었다. 그동안 잘 못 봤으니까.
칫솔에 치약을 짜는 뒷모습과, 거울에 비치는 앞모습이 전부 보였다. 둘 다 내껀데 둘 다 예쁘네. 하지만 둘 다 나한테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게 참기가 힘들었다.
이만큼 기쁠 거라고 상상한 순간이 사실 그만큼 기쁘지 않을 때 제일 힘들다. 그래서 보통은 기대를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오랜만에 만난 거라 기대를 접기가 어려웠다. 양치질을 하는 사람에게 나는 굳이 말을 시켰다. 떨어져있는 동안 욕심만 늘어서.
“형, 나 사랑해?”
“응.”
“많이 사랑하지?”
“그래.”
형은 거기까지 대답해주고 욕실 문을 닫았다. 나는 무릎 위에 손을 놓고 오도카니 기다렸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문은 오래지않아 다시 열렸다. 양치를 끝내고 나오는 형과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 문이 닫히고 열린 건 아주 잠깐이었는데, 분위기는 많이 날이 섰다. 늘 하던 문답을 내가 또 시작한 탓이다. 이 뒤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는 마치 대본처럼 정해져있다.
“그럼 왜 사랑한다고 말 안 하고 응, 아니면 그래, 하고 대답만 해?”
사랑의 정의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비슷한 정의와 무게를 나누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좋은 쪽으로 말고 나쁜 쪽으로.
형은 한숨을 짜증 섞인 것으로 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러 번에 걸친 똑같은 싸움으로 진절머리가 났을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의자를 밀어 도로 식탁 앞으로 가져다놓았다. 안 그래도 아슬아슬 하던걸 아주 망쳐놔서 미안하긴 한데, 어. 아니, 사실은 미안하지 않다.
꺼내면 아주 높은 확률로 싸우게 되는 말을 한건, 모른척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이해하자, 하면서 참다가 보면 어느 새 한계에 도달하고, 그래서 한번 시원하게 싸우면 다시 한계에서 멀어진다. 해결하는 게 아니라 미루는 셈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 말아야지. 좀 피해야지. 그러다가 내가 지금 누구를 피하고 있는지 깨닫고 우울해졌다. 기껏 여기까지 찾아와놓곤. 고작 하룻밤 같이 잤는데 벌써 견딜 수 없어진 게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등 뒤로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신발을 신고 우산을 들었다.
2.
나왔는데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추워서 못견딜 때 까지, 우산 밑에서 비를 한참이나 구경했다. 코가 얼어버릴 즈음이 돼서야 따듯한 걸 마셔야겠다 가까스로 결정 내렸다. 주변 지리를 잘 몰라서, 그냥 저번에 데이트하다가 들어갔던 카페를 골랐다.
아무거나 주문해놓고 카페의 푹신한 의자에 축 늘어졌다. 주말이지만 한 사람 자리야 있겠지. 영화라도 보려고 휴대폰을 들어 현재상영작을 살폈다. 그러다 우연히 상영예정작 쪽으로 화면이 넘어갔다. 더욱 무심히 스크롤을 내리다…… 으슬으슬함을 느끼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7년 만에 다시 보는 제목이 있었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눈에 띄는 영화는 아닌데도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오직 그것뿐이다.
이 영화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둘 다 말하길 좋아해 더 그랬겠지만, 나눌 말이 참 많은 영화였다.
형아는 전화기를 붙잡고 밤새도록 사랑을 퍼주다가도 문득문득 이 영화 얘기를 했다. 나는 그 시간엔 대부분 잠결이라 나도 사랑한다고 몇 초에 한번쯤 기계적으로 웅얼거리는 게 다였는데, 영화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면 꼭 대답을 했다. 형아, 혹시 영화에 투자라도 했어? 내 볼멘소리에 형은 떼어놓은 수화기를 통해서도 들리도록 웃었다. 아니야, 그냥 너랑 같이 보러가고 싶어서. 나는 입을 삐죽거렸다.
개봉일 까지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고, 마침내 개봉이 사흘 남았을 때엔 나도 제법 영화를 기대하게 되었다. 영화가 기대한 그대로면 언제 재관람을 할지도 얘기했다. 영화는 아주 소수의 영화관에서만 상영을 했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였다. 그나마도 우리 둘 다 처음 가보는 동네라, 영화 보고서 밥은 어디서 먹을지, 산책로가 적당한지를 알아보며 많이 들떴었다.
결론만 말하면, 형아는 영화도 못 보고 밥도 못 먹고 산책도 못 했다. 다 내가 혼자 했다.
그날 밤에 걸려온 전화를 나는 빨리 끊었다. 하루 종일 바빴잖아. 안 힘들어? 하고, 평소보다 일찍 인사를 했다. 바보처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건강이라고 했으면서, 본인은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일을 한다고. 그게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창문이라도 깨고 싶었다. 회사에서 건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형아는 아마 한참 퇴근을 못 했을 것이다.
그렇게 감정이 퐁퐁 솟아나는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 너무 남 얘기 같아 나도 의아하다.
그로부터 보름쯤 지났을까,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같이 서점에 갔다가 원작 소설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보았다. 내가 먼저 집어서 몇 장면을 빠르게 읽었다. 이거 살까? 영화 못 봤으니까 책이라도 볼래. 나는 별 생각 없이 느낀 바를 말했다. 그런데 있지, 영화가 더 좋아. 캐스팅을 너무 잘했어. 내 말에 형아의 손이 책 표지에서 미끄러졌다. 그래, 그럼 다음 주에 영화로 보자. 같이.
그렇지만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형아는 계속 바빴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유별나게 바쁜 시기가 있기 마련임을 유난히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형아네 회사에 불 지르면 형아 일 안 해도 돼?
그럼 똘이랑 콩이랑 나리가 굶어요.
사뭇 진지한 내 물음에 형아는 현실적인 대답을 해줬다. 농담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진심이었다. 그땐 정말 무모하게 좋아했으니까. 영화를 질투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가 사랑하는 사이가,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미워하는 사이가, 그리고 지금은 아는 사이가 된 사람.
이제는 뭐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헤어질 때만 해도, 앞으로 얼굴 보지 말자고 날선 말을 하는 동시에 만약 보게 되면 눈물부터 날 거라고 단정 또한 지었다. 오래 연애한 상대한테는 으레 이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건지 알 길이 없다.
뜨겁던 음료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도 생각이 변치 않으면 메시지를 보내보려고. 바쁜 사람이니 재개봉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테니까, 내가 알려주려고. 그냥 알려주기만 하려고.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청히 바라보다가 음료를 잡고 들이켰다. 입천장과 혀를 잔뜩 데었다. 손이 멀쩡해서 메시지를 보내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재개봉한대
바로 이전 대화는 3월 3일이었다.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고 나서 연락한 셈이다. 3월 3일 3시 33분이라고, 신기하다고 말하는 형아와, 그걸 신기해하는 당신이 참 귀엽다고 말하는 내가 낯설다. 정말이지 까마득 잊고 있던 대화였다.
그러고 보니 나 시답잖은 거 정말 좋아하는데.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잊고 있던 내 모습이 기억이 났다. 이젠 그런 유치한 거 안 해, 하고 뿌듯해하던 것도. 지금의 연애를 시작한 후로 그랬지 싶다.
읽었다는 표시는 나는데 답이 없어 이번엔 의문문으로 보냈다.
보러가야겠다
보러갈거야?
1초의 간격으로 대화가 엇갈렸다. 몇 년 전 일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너한테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신기하게 너한테서 연락이 와. 별 같은 눈동자를 하고 내게 그랬었지. 그건 나도 똑같았다. 무얼 할까 궁금해서 휴대폰을 집으면 문자가 오곤 했다. 동시에 말을 건 적이 너무 많아 가끔은 귀찮기도 했고 때로는 투덜대기도 했다.
약속 잘 지키네 성종이
화면에 뜬 내 이름에 심장이 철렁했다. 겨우 이름 한 번 불린 것으로 나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던 때로 시간을 건너뛴다. 얼굴이 홧홧하고 눈앞이 어질어질해서 휴대폰을 손끝으로 밀었다. 소름이 돋은 팔을 몇 번이나 문지른 다음에야 휴대폰이 다시 손에 잡혔다.
무슨 소리야? 하고 묻기 전에 짚이는 것이 있어 대화 내역을 위로 쭉 올려보았다. 사귀고 헤어진 사이라는 걸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시답잖고 엉뚱한 대화들뿐. 여덟 달 만에, 다섯 달 만에, 두 달 만에 주고받은 별 의미 없는 얘기들이 한가득. 영양가 없는 글자들을 눈으로 빠르게 훑으며 대화창을 올렸다. 그러다 발견했다. 나 너 본가 쪽 왔는데 여기 영화관 괜찮아? 로 시작된, 또 하나의 별 볼 일 없는 대화. 나는 기특하게도 제법 성실히 대답을 해주었다. 지금의 나는 잊어버린 정보도 있다. 형아는 고맙다고 했고, 나는 괜히 바쁜 척을 했다. 어렴풋 기억이 났다. 사실 이 때 본가에 있었는데, 나.
내년에 영화나 볼까 우리?
그래 그러자
그 날의 대화는 재미없게 끝나있었다. 차라리 웃기다. 편한 사이인척 하느라 참 애썼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님을 안다. 서로 그렇다. 이것보다 훨씬 활기차고, 솔직하고, 바보 같은 사람임을 안다. 용기가 없는데 겁쟁이가 아니라 바보가 되었다.
문득 형아도 나와 같았을까 걱정이 든다. 우리 집 가까이 왔다는 건 사실 보고 싶다는 말이었을까. 오늘의 나처럼 그 날의 형아도 그랬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단 맛은 이렇게 지워지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하나의 감정만 들 수가 없게 되었다. 안쓰러운 동시에 우습고, 미안해하는 동시에 안도한다. 피하고 싶지만 사무치게 그립다.
알잖아 나 약속 잘 지키는 거
맞아 그래서 니가 좋아
좋다는 말에 또 어딘가로 끌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냥 그런 말이 듣고 싶었고, 시간이 흘러도 내 작은 특징들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집에 있을 사람이 생각났지만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형아는 나 때문에 결말을 모르게 된 거니까.
3.
집이 어둡고 조용하다. 신발이 나동그라진 것을 그냥 두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잠을 자고 있다. 옷도 안 갈아입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자는 사람의 뺨에 차가운 손등을 가져다 대자 꿈틀꿈틀하고 이불 아래 몸이 움직였다. 깨우지 마, 밥 해놨어, 하고 작게 웅얼거린다. 밥 달라는 소리는 아니었어. 변명을 했더니, 조금 전보다 더 작은 목소리가 미처 말이 되지 못하고 그냥 소리로 그쳤다.
“지금부터 자면 이따 새벽에 깨서 고생할 텐데.”
“…….”
“같이 밥 먹자.”
말하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대답이 없어서 침대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문을 닫고 나와 일단 가만히 섰다. 방문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른다. 한 일도 없는데 숨이 찬다. 가슴께를 두어 번 두드리고 심호흡을 한다. 화를 내도 미워하지는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식탁 의자는 내가 아침에 뒀던 그대로다. 그 위에 앉아 차가운 테이블 유리에 뺨을 묻는다. 조금 진정이 된다.
혼자 먹는 것도 같이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지금은 혼자 먹을 기분이 아니다. 저기 문 닫힌 방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랑 같이 먹고 싶은 기분이지. 혼자 못 해서 같이 하자는 게 아니고, 같이 하는 게 좋으니까 같이 하자는 건데. 혹시 날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 하는 어린애로 생각하고 있을까.
사랑을 표현 안 해도 사랑하는 거야? 목덜미를 문지르며 고민해본다. 표현을 안 하고 썩히는 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다. 짝사랑 상대도 아니고. 세상이 다 아는데 왜 본인만 아닌 척을 하고 있을까 난 모른다. 무슨 생각인지 나는 하나도 모른다. 화를 내도, 짜증을 내고 끈질기게 매달려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내가 화를 내는 게 당연하지 않아? 날 이렇게 어린 애로 만든 게 누군데. 그런데도 나한테 사랑받는 게 누군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짓눌려서 열이 오른 뺨이 고개를 들자마자 식는다. 희뿌연 시야가 눈을 깜빡이자 천천히 깨끗해진다. 꽤 깊이 잠들었던 탓인지 잠시 상황 파악이 안 됐다. 내 집이 아니라 형의 집이고 내가 또 시비를 걸었고 그래서 지금 몹시 답답하다는 것까지 미끄럽게 쭉 떠올랐다. 의도치 않게 한 번 복습한 것이 되었다. 어떻게 좋은 일이 하나도 없을까. 영화를 보기로 한 것만 반짝 좋고 나머지는 다 싫다.
“밥 안 먹었네.”
밥솥을 열어본 형이 그런다. 자정이 넘었다. 그러니까 아까 일어나서 나랑 밥 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우리 맛있게 먹고 산책도 다녀오고 지금쯤 자려고 누웠을 텐데.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불만을 눌러 담으려 해도 자꾸 삐져나온다. 내 인내심이 약해진 게 아니라 불만이 커져서.
“형은 왜 나 사랑 안 해?”
식탁에 다시 뺨을 대고 엎드렸다. 아까 분명 데워놨는데 흔적도 없이 열이 날아가서 다시 차갑다. 고개를 모로 하고 형을 본다. 형도 나를 빤히 보고 있다. 아무렇게나 솟은 머리카락과 졸음이 덜 가신 눈을 하고. 예쁜 손으로 눈을 비비기도 하면서. 나에 비하면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자꾸 이러는지 알 리가 없다. 지금 내가 위태로운 걸 안다면 이럴 수가 없다.
“내 마음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
눈을 비비던 손을 내리자 눈가가 발갛다. 지금도 내 손등 차가운데. 대고 시원하게 식혀주고 싶지만 형의 마음을 몰라서 안 되겠다. 그럼 사랑한다 말해보든가. 문장 안에 감추지 말고, 대충 흘리지 말고, 또렷한 말로 좀 해보든가. 조목조목 따져 묻고 싶은데 그러기엔 이미 너무 지쳤다. 나는 형을 향했던 고개를 돌려 반대쪽 뺨을 식탁 유리에 누른다. 하려던 말도.
“얄미워서.”
대신에 엉뚱한 말을 한다. 이렇게 말해도 워낙 머리가 좋은 사람이니 다 알아듣겠지. 사이가 나쁘니 싸울 짓은 하지 말자 생각해놓고, 금붕어처럼 잊어버렸다. 이제 싸울지 말지는 형이 결정하게 되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내 귀는 빨개진다. 억울하고 서럽다. 나는 정말로 싸우고 싶지 않아. 사랑받고 싶어. 그런데 사랑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 때면 싸우고 싶어져.
우는 걸 감추려고 노력한다. 집중하느라 잠깐 숨도 참았다. 툭하면 시비 걸고, 투덜대고, 어린애처럼 굴고. 거기다가 눈물까지 보이긴 정말 싫다. 애인을 소개할 때 형이 할 수 있는 좋은 말이 얼마나 될 지 세어본다. 그냥 사람으로서 말고, 애인으로서 좋은 점을 형은 내게서 찾을 수 있을까.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난 다음에야 참았던 숨을 쉰다. 언제나 어렵다. 내가 원하는 건 쉬운 건데.